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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저터널 다시 주목…득실논쟁 수면 위로
  첨부파일 : 등록일 : 2016-08-31  

한일 해저터널 다시 주목…득실논쟁 수면 위로

# 100년 이어온 찬반 대립

- 한일 민간연구회서 공론화
- 정치권도 논의·연구 이어져
- 부발연, 후쿠오카~가덕도
- 일본, 가라쓰~거제도 제안

# 부산에 득될까 실될까

- "동북아 물류 중심지 도약"
- "日 대륙 진출 경유지 전락"
- 市, 연구용역비 예산 확보

세계화와 지역화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초국경 광역경제권의 시대가 열렸다. 국가 간 경제가 도시·지역 간 경제체제로 진화하고 접경 지역은 개방과 협력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에 발 맞춰 동해를 끼고 있는 남북한과 중국 동북부, 일본, 극동 러시아를 묶는 환동해 경제권 역시 세계적 경제블록을 가속하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이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극심한 찬반 갈등 속에서도 폐기되지 않고 다시 논의의 장에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환동해 경제권의 물류 허브도시를 구상 중인 부산시는 내년 예산에 연구용역비 5억 원을 확보해 한일 해저터널의 노선과 사업 규모 등 현실적인 검토에 들어간다.


■한일해저터널 또 수면 위로

지난달 26일 (사)목요학술회와 (사)글로벌포럼의 주최로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제1차 한일터널 라운드 테이블'이 개최됐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한일터널연구회 서의택 공동회장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역대 양국의 정상들이 한일 해저터널 어젠다를 발표했음에도 그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며 "이번 라운드 테이블은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졌던 민간 차원의 연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공론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 해저터널은 1920년대 일본 군부에 의한 '대륙 진출 루트'로 처음 제기됐다. 이후 1981년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하면서 재점화됐다. 이듬해 일본에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됐고, 1986년 한국에서도 한일해저터널연구회가 창립돼 정치권 등에서 논의와 연구를 이어왔다.

한국과 일본의 민간연구회는 해저터널 건설에 뜻을 같이하지만, 노선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인다. 일본은 규슈의 가라쓰에서 출발해 이키섬과 쓰시마를 거쳐 거제도에 닿는 노선(220㎞)을 제시했다. 반면 부산발전연구원은 가라쓰가 아닌 후쿠오카~이키섬~쓰시마~남형제도~가덕도의 연결 노선(222.6㎞)을 제안하고 있다. 가라쓰는 과거 임진왜란의 출병 기지라는 역사성으로 정서적 거부감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또 경제적 수요가 많은 후쿠오카와 연결해야 초광역 경제권의 기반시설로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환태평양 물류중심도시 기대

부산이 동북아 통합교통망의 중심도시로 도약하려면 다양한 물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이 핵심이다. 한일 해저터널이 열리면 부산과 후쿠오카는 시속 500㎞ 이상 초고속열차로 달려 1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아울러 기종착지인 부산은 일본과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은 물론 환태평양을 연결하는 기점이 된다. 부발연은 한국이 해저터널 건설에 19조 원을 투자할 경우, 생산유발 효과가 54조5000억 원에 이르고 고용유발 효과도 4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라시아 관문이라는 부산의 지정학적 이점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부발연은 "부산의 물류 경쟁력이 높아 쉽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항에서 중국의 동북 3성으로 이동하는 시뮬레이션 결과, 일본의 고베항과 부산항의 해양운송 거리와 비용은 비슷했다. 그러나 고베에서 부산항에 오려면 800㎞ 이상을 철도로 더 이동해야 해 일본으로 갈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부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수요는 감소할 수 있지만, 일본행 화물이 주로 부피가 적은 전자제품이기 때문에 약 40만 TEU(1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한 대)로 부산항 전체 연간 물동량 약 2000만 TEU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부발연 최치국 박사는 "지난 100년간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침략과 갈등, 분쟁의 역사였다면, 다음 100년은 공동과 번영의 역사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며 "한일 해저터널은 두 나라 간 마음의 터널을 뚫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역사와 문화 경제 기술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日 유라시아 진출 발판 우려

한일해저터널 일본측 시발점인 규슈 사가현 가라쓰의 해저터널 공사현장. 국제신문DB

한일해저터널이 열리면 부산을 중심으로 한 물류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는 전망과 달리, 일본 대륙 진출의 경유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정명가도(征明假道)'의 현대판이라는 얘기다.

부산시 김영기 전 건설본부장은 "2003년 정부의 비용편익분석에서도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저터널이 뚫리면 일본은 섬나라에서 대륙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한국은 얻는 이익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거가대교가 생기면서 거제도의 해운 선사들이 사라졌다. 우리 역시 한일터널로 해상과 관련된 많은 부분을 잃게될 것"이라며"부산 경제는 경제력 8배, 면적 6배, 인구 1.4배인 일본 규슈에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갈 것이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10여 년에 걸친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제작기술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 기술력으로 만든 KTX 대신 현재 고속철도의 최고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신칸센이 철도물류를 주도하게 된다는 얘기다. 또 각종 철도 도로 터널 등 건설사업권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꼴이 된다는 주장이다.

막대한 공사비에 따른 재정 부담도 풀어야 할 문제이다. 영불터널처럼 장기간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일해저터널 논의 역사

1920년대: 일본 군부에 의한 '대륙진출루트' 가운데 하나로 제기

1981년: '제10회 통일에 관한 국제회의(ICUS)'에서 '국제하이웨이 프로젝트 구상사업'의 일환으로 논의

1982년: 일본 측에서 일한터널연구회 설립

1986년: 한일해저터널연구회 창립(회장 윤세원 총장)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 의회 연설 중 이 사업을 제안

1999년 9월: 한일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 사업을 제안

2000년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일본 모리수상이 이 사업을 추진할 것과 'ASEM터널'로 명명할 것을 제안

2003년 2월: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업을 제안

연구수행: 한국교통연구원(2003년), 부산발전연구원(2009년) 등의 공공연구기관이 이 사업에 관한 연구 수행

2008년 1월: 사단법인 한일터널연구회 출범(공동대표 서의택.이용흠)

~현재: 한일학회 차원의 강연회 심포지엄 등 연구 및 교류활동

국제신문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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